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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육아에 발목잡힌 老後…“허리 환자 25% 손자·손녀 육아 탓”

곽창렬 기자 lions3639@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1-07-05 12:46

[육아, 기쁨에서 고통으로] [3] 할아버지·할머니도 힘들다
취미생활은 꿈도 못 꿔 “애 못 봐주겠다” 선언도… 맞벌이 3분의 2 부모에 의지, 도시의 손자 돌보려 주말부부 되는 경우도

경기도 안산에 사는 이경숙(63)씨는 요즘 정형외과에 다니고 있다. 왼쪽 손목과 어깨가 너무 아파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병원에서는 오랜 기간 애를 안아서 손목 힘줄이 늘어난 것 같다고 했다.

이씨는 지난 2009년부터 산업인력공단 간부로 있는 딸을 위해 외손 세 명을 봐주고 있다. 그전 8년 동안은 친손자 2명을 돌봐주었기 때문에 10년째 아들·딸의 자녀를 키워주는 셈이다. 손자 둘을 돌본 다음, 더는 애들을 봐주지 않고 내 인생을 찾겠다고 다짐했지만 애들을 돌보던 친척이 떠나면서 쩔쩔매는 딸을 보니 어쩔 수 없었다.

이씨는 "셋을 돌보다 보니 하루 종일 눈코 뜰 새가 없이 바쁘다"고 말했다. 아침 7시부터 딸과 사위를 출근시킨 후 아침 7시 30분에는 초등학교 1학년생인 외손녀 밥을 먹인다. 8시쯤 외손녀가 학교로 가면, 네 살짜리 외손녀와 두 살 짜리 외손자를 깨워 아침을 먹이고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어린이집으로 보낸다. 이렇게 하고 나면 오전 10시. 이때부터는 손자·손녀의 간식과 저녁을 준비하기 위해 장을 봐야 하고 집 안 청소도 해야 한다. 이씨는 "이제 남들처럼 복지회관이나 노래교실에 다니며 취미생활도 하고 싶은데, 손주들을 보느라 꼼짝을 못해 거의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노후 발목 잡는 육아 부담

자녀 세대의 육아부담은 고스란히 할머니·할아버지들에게 넘어가 이들의 노후를 발목 잡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지난해 워킹맘 1308명을 대상으로 누구에게 애를 맡기는지 조사한 결과, 친정부모 또는 시부모에게 맡긴다는 응답이 64.5%(복수 응답)로 가장 많았다. 어린이집이 43.5%, 베이비시터는 22.1%였다. 맞벌이 부부의 3분의 2 정도가 부모세대에게 육아를 의지하는 것이다.

손자·손녀를 돌보는 노인들은 "이런 중노동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 방배동 김영순(66)씨는 "딸이 애를 맡겨 2년 동안 돌봤는데, 저녁이면 삭신이 다 쑤실 정도로 힘들었다"며 "모임 하나 못 나가고 꼼짝을 할 수 없어 딸이 둘째를 낳자 '더 이상은 못 봐주겠다'고 선을 그었다"고 말했다.

황혼 육아는 노인들의 건강도 위협하고 있다. 한 척추병원의 조사 결과 50~60대 허리통증 환자의 네명 중 한명은 육아 때문에 생긴 것으로 나타났다. 정형외과 전문의 박영우 원장은 "손자들을 돌보는 노인들의 관절이나 뼈 상태는 다른 노인들보다 더 심각하게 나쁠 수 있다"고 말했다.

5일 오후 6시 30분쯤 이경숙(63·경기도 안산시)씨가 학교와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외손들을 데리고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2001년부터 친손자와 친손녀를 돌봤던 이씨는 2009년부터는 외손자·외손녀 셋을 돌보고 있다. 이씨의 딸과 사위는 육아 때문에 이씨 집에 들어와 살고 있다. /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월·화는 시댁, 수·목은 친정에

공기업에 다니는 이모(31)씨는 네 살배기 딸을 월·화요일은 시어머니(64)에게, 수·목요일은 친정어머니(60)에게 맡긴다. 이씨는 이를 위해 서울 서초구 방배동인 시댁과 관악구 남현동인 친정의 중간쯤인 동작구 사당동으로 이사했다. 아침 7시면 요일에 맞게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가 이씨 집에 와서 아이를 데려가 어린이집에 보내고 이씨가 퇴근하는 저녁 9시까지 아이를 돌봐준다. 이씨는 "나이도 많은 두 분께 아이를 맡기는 것이 너무 죄송스러워 금요일은 도우미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육아 문제는 할아버지·할머니들을 주말부부로 만들기도 한다. 강원도 춘천시 후평동에 사는 곽순영(가명·64)씨는 매주 일요일 밤 7시 집을 나서 서울 중랑구 신내동 딸의 집으로 향한다. 초등학교 교직원으로 일하는 딸 대신 손자와 손녀를 돌보기 위해서다. 곽씨는 이처럼 주중에는 외손들을 돌보고 금요일 밤 다시 남편이 있는 춘천으로 돌아가는 주말부부 생활을 수년째 하고 있다.

황혼 육아가 늘어나자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지난해부터 전국을 돌며 '조부모 육아 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1년에 4차례 여는데, 매번 만 50세 이상 수강생이 70~100명씩 몰릴 정도로 인기다. 손자 셋을 돌보는 조영란(62·경기도 용인시 죽전)씨는 지난해 6월 경기도 수원에서 열린 강좌에 참석했다. 조씨는 "우리 젊었을 때 애 키우는 것과 많이 다르니까…"라며 "아이들 건강관리와 응급처치법, 손자·손녀와 함께 놀이하는 법, 성품 좋은 아이로 키우는 법 같은 걸 배웠는데 유익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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